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犬生을 건강하고 행복하게/동물 이야기

어느 말똥가리 새의 죽음 - 버드세이버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

by 충전*'* 2023. 2. 7.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다. 너무 추워서 아침 강아지 산책을 짧게만 하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화단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비둘기보다 제법 큰 새였는데, 예전에 황조롱이를 구해봤기 때문인지 황조롱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화단에-앉아있는-몸집이-있는-새-한-마리

 

왜 저기에 앉아있는 걸까.

 

아파트 화단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새가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사람이 근거리에서 쳐다보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것 자체가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아지가 그만 가자고 재촉을 했고 난 그 자리를 떠나 산책을 하는 동안, 돌아가는 길에 확인할 때에는 제발 그 자리에 없길 바랐다.

 

흙-위에-앉아있는-말똥가리-새-한-마리
멀리서 몇 배로 확대해서 찍었던 사진

 

하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있었고 그때 난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화단으로 올라가 아주 가까이 다가갔는데, 나를 빤히 쳐다볼 뿐 도망가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 거니.

 

도와달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눈이 너무 슬프게 보였다. 그때 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아프지 않게 도와줄게.

 

 

나는 경기도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번 물까치와 황조롱이를 살려줬던 것처럼 이 녀석도 구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쯤 후에 도착할 거라며 그동안 새를 구조해서 데리고 있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난번 황조롱이를 구조해 주셨던 경비아저씨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구조하는 과정에서 보니 왼쪽 발목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저런 몸이라서 못 날고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한 주민이 새가 그곳에 한참을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저씨가 자신을 조심히 들어 빨래바구니에 담는데도 얌전히 있어주었다.

 

경비 아저씨는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늘 도와주시고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정말 좋으신 분이다. 새를 구조할 때에도 바로 접근하지 않고 괜찮다, 도와주려는 거다...라고 말을 하신 후에 천천히 다가가신다.

 

지난번 황조롱이 구할 때에도 경비실에서 잠시 보호해 주시면서 생고기도 주시고 참 살뜰히 돌봐주셨었는데 이번에도 구조센터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경비실 초소에서 따듯하게 있게 해 주셨다. 덕분에 덜덜 떨던 새가 따듯한 온기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난로-옆-상자-안에-들어있는-다리를-다친-새-한-마리

 

그리고 얼마 후 야생동물보호센터 직원분이 오셨는데 그분께 예상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녀석은 황조롱이가 아니라 말똥가리 새라는 것이었다. 

 

황조롱이가 아니라 말똥가리라고?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수많은 종의 동물들이 들어올 것이다. 생명을 아끼는 분들이니 종을 가려가며 치료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보내는 입장에서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를 보낼 때가 물까치를 보낼 때보다 더 안심이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온-몸이-젖은-채로-발목이-꺾여져-있는-중형-크기의-새
발목을 다친 말똥가리

 

그런데 말똥가리는 어떤 친구인지 모르니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잘 돌봐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제 이 녀석의 생명은 이분들이 지켜주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는 바로 캔넬에 담겨 차로 옮겨졌다. 직원분께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케이지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말똥가리에게는 꼭 나아라...라는 마음속 인사를 건넸고, 곧 그렇게 작별을 했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았는데 차 주위를 감싸도는 안개가 여전히 짙었다. 

 

꼭 나아라. 제발.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말똥가리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말똥가리는 중형 크기의 맹금류로 솔개와 모습이 거의 비슷하게 생긴 우리나라의 겨울 철새라고 한다. 이름이 좀 재미있긴 하지만 수리목 조류 중 가장 멋있는 사자후를 내지른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찾아보니 가끔 들어봤던 것도 같고 소리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드넓은 하늘을 활공하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멸종위기 야생생물포털이라는 사이트에서 큰말똥가리가 2017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었다는 정보도 찾을 수 있었다. 말똥가리, 큰말똥가리, 털발말똥가리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에 구조된 녀석이 정확히 큰말똥가리인지는 모른다. 기왕이면 멸종위기 동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잘 치료받고 있는 거니? 

 

이전에도 겪었었지만 구조한 동물을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보내고 나면 직원들이 많이 바쁘실 텐데 싶어 전화도 할 수 없고 속으로만 애를 많이 태우게 된다. 이번에 구조한 녀석은 다리 수술이 필요해 보여서 더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꾹 참다가 4일 정도 지난 후에 조심스레 전화를 걸어 상태를 여쭤보았다. 그런데 너무 안타까운 대답을 듣게 되었다. 센터에 도착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발성 골절 소견이 있었고 그래서 부목을 대어 조치를 했지만 다음날 폐사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우거진-나무-사이로-안개가-가득한-풍경

 

전화를 끊고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치기는 했지만 기운도 있어 보였기 때문에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구조센터의 수의사분께서는 창문에 부딪혀 떨어진 것 같은데, 부러진 다리 외에도 알게 모르게 문제가 생겨 원인 없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왜 수술을 안 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부목으로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하셨다. 그건 그분들이 정할 일이었고 최선을 다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발목이 꺾여있었는데 거기에 부목을 댈 때 얼마나 아팠을까, 또 경비아저씨가 들어봤을 때 너무 가벼웠다고 하셨었는데 밥이나 먹고 떠난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많이 어지러웠다. 결국은 거기까지가 그 아이의 운명이었겠지만 사람이 설치한 구조물만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

 

생명을 구하는 버드세이버 

 

한해에 투명 방음벽이나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야생조류의 수가 8백만 마리가 넘는다는 한다. 800만 마리면 얼마나 될까.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는 하늘 안에 수많은 새들이 가득 날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얼추 맞을까? 그 새들이 사람으로 인해 매년 안타깝게 죽는 것이다. 날아다니는 새들로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텅 비어버린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실감이 된다.

 

 

한 번이라도 이런 사고가 일어난 건물에서는 계속해서 같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대로 두면 소중한 생명이 계속 사라질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면 그것도 죄가 아닐까. 다행히 '버드세이버'라는 해결책이 있다.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창문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구하기도 쉽고 효과도 아주 좋다. 

 

 

 

야생조류 보호해주는 버드세이버를 아시나요.

야생조류 보호해주는 버드세이버를 아시나요. 저희 집은 도심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습니다. 앞산이 가까이 있어서 여름엔 우거진 녹음이 참 멋스럽고 겨울엔 눈 내린 설경이 얼마나 아름다운

dddays.tistory.com

 

마음이 아픈 일이라 글을 적을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막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똥가리 구조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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